본문 바로가기

중국 MBA

[김지영 칼럼] 교실밖 에피소드 5 – 중국에서의 첫 설날

 

 

 

교실밖 에피소드 5 – 중국에서의 첫 설날

 

2009년 설날, 중국식으로 말하면 춘절을 나는 MBA에서 사귄 내 베프 왕칭 집에서 보냈다. 생각해보면 알고 지낸지 석달도 되지 않아 왕칭과는 정말 급속도로 친해지고 또 깊이있게 사귀었던 것 같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인 왕칭은 MBA에 왜 왔나 싶고 전혀 MBA에 들어 올 여학생 답지 않은 스타일로, 말도 내가 아는 중국 사람중에 제일 느릿느릿, 표정도 항상 어리버리한 순정파 푼수라고 할 수 있다. (왕칭이 한글을 모르니 참 다행이다.)

아무튼 우리는 1학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의기투합, 시간만 나면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고 왕칭은 나에게 계속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새로운 사람을 소개시켜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왕칭이 없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북경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왕칭이 나에게 말했다. “지영아, 너 이번 설 우리집에 가서 보내지 않을래?” 나는 중국에서 설날에 친구를 초대하는 것은 정말 보통 성의가 아니면 힘들다는 얘기를 전부터 들었기에 너무 고맙기도 하고 또 실제로도 중국 최고의 명절이라고 하는 춘절이 어떤지 직접 체험해보고 싶어서 선뜻 대답을 했다. “그래~ 좋아~~!”

 

왕칭은 길림성(吉林省) 사평(四平)출신으로 부모님은 고향에서 식자재 장사를 하고 계시고 왕칭은 외동딸이다. 옛날에는 장사를 하시느라 부모님 두분이 고생이 많으셨다고 하는데 이제는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단다. 북경에서 가까운 편이라는 그곳에 KTX 보다 훨씬 빠른 고속철도를 타고도 약 6시간만에 도착했다. 전형적인 북방인 스타일의 인심 좋은 왕칭 부모님이 마중나와 계셨다.

동북지역에 온 것도 처음, 춘절도 처음, 모든게 처음인 내게 사평에서 보낸 일주일은 정말 인상 깊은 시간들 이었다. 다 소개할 수 없으니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왕칭은 자기집이 조그마한 아파트 일 층으로 앞에 조그마한 텃밭이 있다고 내게 말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이게 웬걸 천장이 엄청 높은 복층에 일층 거실은 100미터 달리기를 해도 될 정도였다. 요즘은 큰 TV 모니터가 유행이지만 아무튼 TV 모니터도 그 때까지 내가 본 것 중에는 가장 큰 모니터였다. 밖은 한발짝만 나가도 두 귀가 얼어붙어 버릴만큼 추웠고 내복에 오리털파카 목도리 모자로 중무장을 하고 나가도 몇 십미터 이상은 걸어다닐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먹으면서 걷지도 않고 차로만 이동해 다녔으니 그 일주일동안 살이 이삼킬로는 찐듯했다.

동북에서는 이인전(二人转)이라고 두명이 대사와 동작을 주고받는 형식의 코메디극이 유명한데, 그날 처음 이인전을 직접 보기도 했다.그런데 공연이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나에게는 극장에서 벌어지는 광경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객석을 채운 관객들은 너나 없이 땅콩, 호박씨, 견과류 등을 손에 쥐고 먹고 있었는데 껍질과 쓰레기를 바닥에 마구 버려서 바닥표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흡연자들은 옆에 누가 있건간에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면서 공연을 보고 있었는데 나는 모습이 너무 놀랍기도 하고 도저히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왕칭도 담배연기를 견딜 없었는지 손을 끌고 나가자고 하기에 우리는 공연을 보지 못하고 나왔다. 중국의 담배문화를 말하자면 아직 한국에 비해 상당히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이런 얘기를 말하면 부모님은 한국도 사실 얼마전까진 그랬다며 옛날에는 우리도 버스에서도 담배를 피웠다는 말씀을 주셨다. 최근 중국도 흡연문화에 대한 캠페인과 함께 국가 정책도 많이 지정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식당, 호텔, 엘리베이터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는 것이 너무나 자유스러워 비흡연자들이 간접흡연의 피해를 받고 있다.앞으로는 점점 좋아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하루는 왕칭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시겠다며 발마사지를 받으러 가자고 하셨다. 나는 워낙 발맛사지를 좋아하고 학교 앞에 저렴하고 시원하게 발맛사지를 받을 있는 곳이 많기에 그런 곳인줄만 알고 따라갔다. 청화대 앞에서 내가 가장 자주 가던 발맛사지 가게는 맛사지사들이 마치 의사가운 같은 옷을 입고 일을 했다. 그러면 맛사지를 받는 나도 마치 한방치료를 받는 기분으로 긴장을 풀고 맛사지를 받곤 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데리고 곳은 일단 샤워를 하고 샤워가운으로 갈아입은 다음 쇼파가 아닌 침대가 놓여있는 곳에 누우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와 왕칭은 아무것도 모르고 수다를 떨며 맛사지사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있다 발담글 물을 들고 맛사지사들은 의사가운이 아닌 세일러복을 입고 등장했다. 세일러복도 보통 세일러 복이 아닌 가슴이 훤히 드러나 있고 치마도 입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짧은 치마 세일러 복이었다. 세일러 맛사지사는 다리를 본인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주물럭 주물럭 안마를 시작했다.이건 안마를 하는 건지 다리를 쓰다듬는 건지,도저히 안마를 배운 사람이 만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만져도 그것보다는 있을 같았다. 시원하기는 커녕 찝찝하기 그지 없었다.아저씨 나름대로는 좋은 곳으로 안내한다고 데려가신 곳이었을텐데, 아마 본인도 안마보다는 다른 용도의 영업소인줄 모르고 안내하셨던 같다. 집으로 돌아올 아저씨를 원망하는 왕칭의 잔소리가 계속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생각해 보면 너무 웃긴 경험이었다.

 

새해 전날 저녁은 니엔예판(年夜饭)이라고해서 온가족이 함께 식사를 한다. 요즘은 중국에서도 보통 밖에 식당에서 니엔예판을 많이 먹는데, 유명 레스토랑은 몇 달전부터 예약을 해야지 당일 자리를 잡을 수 있다.왕칭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다 장남 장녀로 니엔예판을 책임져야 하는 분들이었는데, 양쪽 다 대가족들이라 왕칭 친가쪽 친척들은 식당 2층에 룸을 잡고, 왕칭 외가쪽친척들은 식당 3층에 룸을 잡아 저녁식사를 했다. 아저씨, 아주머니, 왕칭, 나는 2층과 3층을 번갈아 오르락내리락 하며 친척들과 인사하고 식사를 같이했다. 덕분에 나는 왕칭의 모든 친척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

춘절이 끝나고 왕칭은 조금더 고향에 머물고 나는 혼자 먼저 북경으로 돌아왔다. 며칠동안 아저씨 아주머니께서 얼마나 극진하게 대접해 주셨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리고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중국에서의 첫 설날이라는 추억을 남겼다.

 

 

 

칼럼니스트 김지영

 

김지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에버랜드에 들어가 푸드컬처 사업부 소속으로 일하다가 중국 칭화대학교 MBA 과정에 유학 갔다. MBA 과정을 마치고 락앤락의 상하이 현지법인에서 B2B팀장으로 3년간 근무한 뒤 독립해 상하이에서 씨케이브릿지 컨설팅을 설립했다. 저서 : <사막여우 중국MBA 가다>2013.12, 필맥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