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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MBA

[김지영 칼럼] 교실밖 에피소드 3 –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 관전기

교실밖 에피소드 3 –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 관전기 

 

 

 

 

 

 

 

야구. 지금은 그냥 가끔 인터넷 포털에서 프로야구 순위를 확인 하는 정도 이지만 한때는 나도 꽤나 야구를 좋아했다. 용인에 있던 회사에서 칼퇴근을 하고 쏜살같이 잠실야구장으로 가서 야구를 보는 것도 자주했고 내가 죽기전 까지 이루고 싶은 60가지 버킷리스트에는 야구 관련 내용이 4개나 있을 정도로 야구를 사랑했다. ‘스포츠구단 하나 이상 소유’, ‘두산베어스 돔 구장 짓기’, ’한국시리즈 시구하기’, ’홍성흔 선수와 식사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야구를 좋아하던 내가 북경에 도착한 게 2008 8 20. 당시 북경은 올림픽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혈혈단신 북경으로 입성해 뭐하나 아는 것도 없고 교통도 지리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3일 후 823일로 잡힌 베이징 올림픽 야구결승전을 보고 싶은 열망만은 너무나 뜨거웠다.

 

나는 현장에서 우리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하에 표를 구하러 나섰다.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고 인터넷의 바다를 한참 헤메었지만 결국 표는 구하지 못했다. 어디 그 귀한 표가 남아있었겠냔 말이다. 그리고 당시 중국은 몇 십년 만에 한번 올까 말까한 돈벌 기회를 잡은 암표상들의 올림픽 경기 표 사재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들은 표 판매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밤을 새워 줄을 서 표를샀다. 남는 게 시간이고 넘치는 게 사람인 그들이니 오죽했으랴, 인해전술엔 당할 재간이 없었다. 당연히 일반인들이 표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나는 결국 표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현장으로 가기로 했다. 현장에서 암표라도 사서 보자는 심정으로 말이다.

 

북경의 지하철 노선도를 들고 혼자 우커송 경기장을 찾았다. 사람들이 내려서 우르르 향하는 곳으로 대세를 따라 밀려(?)가기만 하면 되어서 경기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중국은 야구라는 스포츠의 불모지이다. 야구를 하는 사람들도 없고 그래서 프로리그도 없기 때문에 올림픽이 끝나고도 다시 쓸 수 있게 지은 다른 스포츠 경기장과는 달리 야구장은 공터에 임시 건물로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암표를 파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원래 표의 정가는 30RMB-150RMB (한화 약6천원에서 3만원 사이) 였다. 경기 시작 전 암표상들은 약 500 RMB 가격을 부르고 있었다. 그 때 500 RMB를 주고 표를 샀어야 했다! 평생 한 번 볼까말까한 경기였는데 그깟 500 RMB가 아까워서 사지 못했다니. 지금에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당시 정의감에 불타던 나는 십만원에 가까운 돈이 너무 비싸게 느껴지기도 했고 부당한 방법으로 폭리를 취하는 못 된 암표상들에게 그 돈을 바치며 표를 사는 게 잘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경기가 시작되면 표 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경기장 앞에서 잘 보이지 않는 전광판을 보며 관전을 시작했다. 마침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경기장에 나온 한국 유학생들 교민들이 많이 있었다.우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잡고 오와열을 맞추어 반듯하게 앉아서 응원을 시작했다. “~~~!” “짜자자짝짜~” 원래 집회와 시위가 금지된 나라인지라 공안들은 잔뜩 긴장하고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다른 사람들과 응원을 시작했지만 전광판은 잘 보이지도 않고 때때로 경기장 안에서 들리는 탄성과 응원소리, 점수가 났을 때 환호소리에 내 심장은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왠걸 암표값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매 회마다 내가 이기나 암표상이이기나, 너네 그 표 못팔면 버리는 거잖아하는 마음으로 가격 줄다리기를 했지만 8회가 되자 오히려 암표값은 800 RMB로올랐다. 나는 8회에 800RMB를 보고 들어가느니 차라리 포기하자는 심정으로 마음을 접고 응원을 계속했다.

 

9회가 시작되고 나서 조금이 지났을까 순간 경기가 중단되고 경기장이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경기장 밖의 우리들은 경기 상황이 너무 궁금하여 다들 일어서서 소용도 없는 제자리 뛰기를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강민호 선수가 심장의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하고 경기가 중지된 것이었다. 절망과 긴장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포수가 진갑용 선수로 교체되고 투수도 류현진에서 정대현 선수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기적같이 1사 만루의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승리했다. 감격의 순간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경기장 밖에서 응원하던 우리들도 함께 얼싸안고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러나 그 감동의 순간을 직접 보지 못한 건 정말 너무나 아쉬웠다. 경기장에서 직접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이다. 

 

 

 

 

 

(교실밖 에피소드 完)

 

 

 

 

 

 

 

칼럼니스트 김지영

김지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에버랜드에 들어가 푸드컬처 사업부 소속으로 일하다가 중국 칭화대학교 MBA 과정에 유학 갔다. MBA 과정을 마치고 락앤락의 상하이 현지법인에서 B2B팀장으로 3년간 근무한 뒤 독립해 상하이에서 씨케이브릿지 컨설팅을 설립했다. 저서 : <사막여우 중국MBA 가다>2013.12, 필맥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