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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MBA

[김지영 칼럼] 04. 입학준비

 

 

 

04. 입학준비  

 

회사에 출근해서 아침에 합격 메일을 확인하고 외근을 나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땅에 발을 딛고 있는건지 구름위를 걷고 있는지 분간이 안갔다. 너무 좋아서 입이 찢어질 것 같다는 표현이 이해가 갔다.

 

모시고 있던 팀장님과 본부장님께 MBA 합격 사실을 말씀드리고 사직의사를 밝혔다. 입사 후부터 쭉 모시던 본부장님은 의외라는 반응이셨지만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면서 여러가지 조언을 해 주셨다. 인사팀에 말해서 사직보다는 휴직으로 혹은 회사 스폰서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라고 하셨다.

 

인사담당자와 면담을 했다. 앞으로 사내에도 중국관련 기회가 많을텐데꼭 지금 중국 MBA를 가야겠느냐, 업무가 마음에 안 들면 팀을 바꾸어 주겠다. 등등 사직을 만류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속으로내가 그렇게 중국업무를 하고 싶다고 할 때 좀 바꾸어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를 많이 키워준 회사고 같이 일하면서 정든 사람들이 많아서 아쉬웠지만 쉽게 찾아온 기회가 아니었기에 포기할수는 없었다.

 

6월 말로 업무를 정리하기로 했다. 인사팀에서는아직 직급도 낮고 해서 회사 스폰서로 MBA를 보내줄 방법은 없지만 대신 휴직으로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특별 케이스로 휴직처리를 해 주는 거니 꼭 복귀해서 다른 직원들에게 모범이 되는 좋은 선례를 남기라고 했다. 당시에는 사직이던 휴직이던 별 차이가 없고 또 휴직이라 하더라도 복귀하지 않을테니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나중에 보니 사직과 휴직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적을 두고 공부하는 것과 적이 없이 공부하는 것은 일단 마음가짐에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들들 볶으며 스트레스를 주는 스타일이다. 이런 나에게 졸업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거나, 가고 싶은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돌아갈 곳이있다는 것은 마음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들 MBA 초기에는 주위 환경과 학업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지만 후기로 갈 수록 학업보다는 취업 문제로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북경에서 공부하면서도 회사 사람들과 편하게 연락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회사의 북경사무소도 수시로드나들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휴직중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회사에 별로 기여한 바도 없고 뛰어난 인재도 아닌데 휴직처리를 해 준 회사가참 고마웠다. 한 사람이 졸업한 학교, 다니는 직장이 그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 해주는 게 아니지만 아직 세상사람들은 그런 것들도 한 사람을 평가하기를 좋아한다. 나도거기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좋게 봐주고 인정해 주는회사 타이틀 덕에 어렵게 갈 수 있었던 길도 조금 쉽게 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첫 직장 덕을 많이보았다.  

 

7월 초 회사 업무를 마무리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청화대 MBA 사무실에서 825일에시작하는 수학 예비수업 (Math pre-course) 대한 안내 메일이 왔다. 8 20일경 북경으로 가는 스케줄로 티케팅을 하고 남은 기간을충분히 즐기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편안했던 한달 반이었던 것 같다. 늦잠도 자고 책도 읽고 아침일찍 바닷가도 산책하고 운동도 했다. 혼자 보름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배낭여행도 갔다왔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면 어떤 시련이 닥칠지도 모르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북경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큰 캐리어 한 개를 끌고 내 키만한 배낭을 메고 북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북경 수도공항에 내려서 학교와 가장 가까운 중관춘(中关村)에 내리는 공항리무진을 탔다. 이제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 내야한다. 중국어를 십여년 가까이 공부한 나인데도 막상 혼자 중국에 도착하니 모든게 무서웠다. 택시를 타면 돌아가지 않을까? 물건을 사면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지않을까? 날치기가 붙어서 돈을 뺏기진 않을까? 괜히 누가 나를 납치해 가진 않을까? 등등등. 도착한 날, 기숙사에 입주하려면 한학기 비용을 선불로 지급해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먼저 현금을 찾아가야 했다. 카드로 결재할 수도 있지만 3%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본인이 부담해야했다. 말이 3%이지 적은 돈이 아니라 현금으로 낼 수 밖에없었다. 출금을 하기위해 혼자 미리 검색해서 알아본 까르푸 중관춘(中关村)점 씨티은행 ATM기를 찾아갔다.

 

북경의 8. 그날은 가만히서 있기만 해도 땀이 사우나에 있는 것 처럼 줄줄 흐르는 여름날씨였다. 나는 산만한 짐들을 끌고 사람으로북적이는 낯선 ATM기에서 돈을 뽑아 다시 택시를 타고 청화대 유학생 기숙사로 향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택시는 과연 빠른 길을 놔두고 돌아돌아 나를 내려다 주고는 바가지 요금을 받았다. 수속 사무실에서 입주수속을 받고 열쇠를 받아 내 방으로 갔다. 기숙사에 도착한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칼럼니스트 김지영

 

김지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에버랜드에 들어가 푸드컬처 사업부 소속으로 일하다가 중국 칭화대학교 MBA 과정에 유학 갔다. MBA 과정을 마치고 락앤락의 상하이 현지법인에서 B2B팀장으로 3년간 근무한 뒤 독립해 상하이에서 씨케이브릿지 컨설팅을 설립했다. 저서 : <사막여우 중국MBA 가다>2013.12, 필맥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