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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MBA

[김지영 칼럼]03. 북경대 낙방, 청화대 재 도전

 

 

 

 

 

03. 북경대 낙방, 청화대 재도전 

 

 

2007 11월 초 모든 지원 자료 준비를 거의 끝내고 북경대 MBA 광화관리학원의 입학담당자와 컨택을 했다. 담당자는 정시 모집 기간은 2월 이지만, 2008년의 경우 1라운드와, 2라운드로 나누어 12월에 1라운드모집을 시작한다고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속이 쓰리고 이해가 안 가는데, 당시에는 왜 그렇게 자신만만 했는지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잘 풀릴거라고 100% 확신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동안 준비하면서 들였던 나의 노력을 하늘이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12월 초 신청 자료를 DHL로보내고 약 1주일이 지나서 인터뷰 통보가 왔다. 마침 17대 대통령 선거일인 12 20일이 인터뷰 날짜로 잡혀서 회사에는 그 전날 하루 휴가를 내고, 지원동기,앞으로의 포부 등 예상질문에 대한 중국어 답안을 만들어 인터뷰 준비를 했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지우려 애써서 그런지 북경대 광화관리학원의 지원, 인터뷰과정은 기억이 아주 흐릿하다. 북경대와 청화대는 교풍이 여러모로 대조적인 부분이 많은데, 그날 인터뷰를 진행했던 경영대 건물도 당시 내가 느끼기에는 오래된 고등학교 건물같은 느낌이었다.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긴장하면서 간단한 질문에 몇 개 대답했는데 면접관이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했다. 오늘이 한국의 대통령 선거일인데,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냐, 이명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었다. 유창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조금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던 것 같다. 이 경험 때문에 나중에 청화대 인터뷰는 정말 준비를 잘 해갔지만 당시 나는 인터뷰를 내 주도적으로 만들지 못했다. 자기소개에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면접관들의 질문을 내가 의도한대로 만들어 가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주도권을 면접관에게 넘겼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면접을 잘 보지 못했는데도 나는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왠지 합격할 것 같았고, 합격하지않는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2008년 새해가 되었다. 부산에서 가족들과 신정 연휴를 보내면서 가족모임을 하고 있을 때 북경대에서 인터뷰 결과에 대한 메일이 왔다. 일단 대기자 명단에 넣어놨으니 2라운드가 끝날 때 까지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사실상의 불합격 통보였다. 한참 새해 계획을 이야기 하고 있던 자리에서 확인한 불합격 메일이라니..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날 저녁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심장이 쥐어 짤 듯이 아파왔고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앞으로 아무 희망도 없고 이대로 주저 앉아서 다시는 앞으로 못나갈 것만 같았다.힘이 다 빠졌다.

 

다음날 얼굴이 퉁퉁 부은 딸을 보고 부모님도 많이 마음 아파 하셨다. 회사 열심히 다니면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라고 하셨지만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넋을 놓고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할 의욕도 없고 사람들도 다 싫었다. 내가 MBA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을 아는 지인들에게 인터뷰에 떨어진얘기를 하는 것도 너무 부끄러웠다. 그렇게 두 달정도 의미없이 시간을 보냈다.

 

당시 중국 MBA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인터넷 카페 모임에서 알게된 분이 있었는데, 계열사는 달랐지만 같은 그룹에서 일하는 분이라 자주 연락을 주고 받았다. 북경대 낙방후 완전 낙담해 있는 나에게 청화대 MBA에 지원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보통 두 군데 다 지원하고 본인도 북경대에 합격했지만 청화대에도 지원할 거라고 하며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니냐고 한 번더 해보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밑져야 본전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기본적인 실력에 상당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어도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았고, 경력도 너무 짧았다. 아직 때가 아니니 조금 더 실력을 쌓고 내년에 다시 지원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처음부터 북경대만 바라보고 준비한터라 청화대는 왠지 지원하고 싶지 않았다.     

 

본인일도 아닌데 당시에 그 분이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청화대에 지원하라고 여러번 조언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는입학 동기가 된 그 분의 끈질긴 협박(?)과 회유덕에 나도 생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그래, 경험삼아 다시 지원해 보자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3 15일이 청화대 지원마감일 이었다. 입학조건이나 준비할 서류들이 모두 대동소이하여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시 한 번 청화대 양식으로 모든 서류들을 준비하여 송부하였고 4 3일 인터뷰 통보를 받았다. 인터뷰 일정이 오후라 연차를 하루내고당일치기로 북경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침 비행기로 가서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는 티켓을 끊고 면접을 준비했다. 

 

북경대 인터뷰에 대한 기억이 겨울이라면청화대 인터뷰에 대한 기억은 이다. 실제 결과도 그러했고 말이다. 인터뷰 당일 목련이 만발해 있던 캠퍼스가어찌나 예쁘던지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햇볕이 쫙 들어오던 통유리로 설계된 공상관리학원 건물 로비도정말 멋져보였다.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나는 2006년동생과 함께 북경 배낭 여행을 갔을 때 청화대에서 찍은 사진을 크게 확대해 갔다. 당시 북경대와 청화대캠퍼스를 구경하면서 나도 언젠가 꼭 유학을 오겠다고 결심했었다. 그 때도 북경대에 더 마음이 가 있었지만어쨌든 그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기왕 청화대 인터뷰를 보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하겠다는마음이었다.

 

면접관이 질문을 하기 전에 내가 선수를 쳤다. 먼저 보여드리고 싶은사진이 있다며 준비해간 사진을 들어보였고, 나는 오래전부터 중국을 좋아했고 또 청화대 MBA에 입학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며, 이년전에 여행을 온 것도 그런이유이고 그 후로 이년동안 청화대 MBA 지원을 위해 준비해 온 이야기를 했다. 사진을 보자마자 면접관들의 눈빛이 호의적으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청화대에 지원한 이유를 물었다. 나는청화대가 중국 최고의 학교라고 생각했고 MBA 역시 중국 최고라고 생각했으며 최고의 교수진들에게 가르침을받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했다. 교수들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눈빛을 교환했다. 여기까지는 다 내가 준비해간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버벅거리지 않고 아주 유창하게 말했다. 그 후 몇가지 질문은 인터뷰라기 보다는 잡담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혼은했느냐? 부모님이 유학 보내시는데 걱정은 안하시냐? 등등 일상적인 내용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이번에는 진짜 됐겠구나 싶었지만 아픈 경험이 있는터라 별로 많은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합격할 수 있을까? 내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을까? 나를 둘러싼 공기에서 변화의기운이 느껴졌다.

 

4 25일 드리어 합격 메일을받았다. 꿈만 같았다. 너무 기뻐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합격 소식을 전했다. 몇년간 고생했던 기억이되살아 나며 내안에서 뭔가 굉장히 홀가분해 진 느낌이 들었다 

 

 

 

 

칼럼니스트 김지영

 

김지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에버랜드에 들어가 푸드컬처 사업부 소속으로 일하다가 중국 칭화대학교 MBA 과정에 유학 갔다. MBA 과정을 마치고 락앤락의 상하이 현지법인에서 B2B팀장으로 3년간 근무한 뒤 독립해 상하이에서 씨케이브릿지 컨설팅을 설립했다. 저서 : <사막여우 중국MBA 가다>2013.12, 필맥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