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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MBA

[김지영 칼럼] [중국 MBA 삼학기] 02. 09학번 오리엔테이션 코치

02. 09학번 오리엔테이션 코치

 

 

09년도 8월말 1년전 우리때와 마찬가지로 09학번들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프로그램은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했다. 아이스브레이킹, 팀빌딩, 교내투어 미션수행, AV(동영상) 경연대회, PT 경연대회 등등. 다만 1년전에는 흰색티를 입고 있던 내가 09년에는 코치가 되어 검은색티를 입은 것만 바뀌었다고나 할까?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지켜보는 기분도 색달랐다.

 

그런 가운데 오리엔테이션 기간동안 잊지못할 사건이 있었다. 여러가지로 내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 경험이었다. 오리엔테이션 과정은 MBA 성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폐막식 때 우수팀에게 개별 시상이 있고 성적이 좋으면 해당 팀에게는 크나큰 성취감을 주기 때문에 모두들 열과 성을 다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다들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입학한 MBA, 누군들 좋은 결과를 바라지 않으랴.

 

초반 팀빌딩 과제, 프리젠테이션이나 AV과제가 겹치면 시간도 부족하고 업무량도 많아 밤을 새워야 할 경우도 있다. 코치는 보통 중요행사나 발표회가 있을 때 함께하고 저녁시간은 팀별로 자유롭게 배정받은 교실에서 과제를 수행한다. 하루는 팀이 과제를하는 모습을 보려고 찾아갔더니 몇몇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누구는 회사에 일이 있어서, 누구는 몸이 아파서 오지 못했단다. 나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빠지는 인원들을 보며 별로 의욕이 없나?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넘어갔다. 남은 인원들은 모여서 PT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다들 얼굴에 생기도 없고 기운이 없어보였다.

 

그 다음날 교실에 찾아갔더니, 어제 없던 인원들은 여전히 자리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핑계를 대는 팀원들의 표정이 정말 어색했다. 난 뭔가 수상하여 팀장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사실대로 얘기를 해 달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팀장이 하는말이 가관이다. 과제수행의 효율을 위해 인원을 나누어과제를 하기로 했고, 그래서 누구누구는 기숙사에서 팀소개 보드를 만들고 있고 누구누구는 집에서 동영상을 만들고 있고, 누구누구는 무슨 과제를 하고, 나머지는 교실에서 PT 준비를 한단다. 나는 그말을 듣고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하였다. 팀과제를 팀으로 수행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수행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들은 학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시행하는 기본 의도와 목표조차 모르고 있었다.누구의 결정이냐고 했더니, 모두의 결정이란다. 모두의 결정이라는데 다른 팀원들의 표정이 어둡다.

 

지금은 그래도 3년간의 중국현지 직장생활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 많이 단련이 되었지만 당시에만 해도 그런 상황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중국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았다. 같은중국어라고 해도 일상대화,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이런 선배나 상사로써의 조언은 말하는 요령이 같을 수 없다. 더구나 어휘력도 부족했으니 오죽했으랴, 한국이었으면 따발총같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을 터 였지만 중국어 능력의 미천함으로 흥분한 마음을 다스리며 일단 알겠다며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기숙사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생각할 수록 어이가 없고 화가났다. 일단 허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이런일이 있었다고 하소연을 한 다음에 그래도 코치를 맡은 이상 잘못된 점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게 내 소임인것 같아 노트북을 켜고 팀원들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목적은 과제수행의 결과에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팀원들끼리 교류하고 협심해서 하나의 생각과 팀웍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고 말이다.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되었고, 개인적으로는 전부 다시 과제를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그리 길지 않은 메일을 쓰는데 장장 2시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일단 나는 내가 할 소임을 다 했으니후배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들의 판단에 맡기자고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다다음날 AV 과제 발표회 겸 오리엔테이션 폐막식이 열렸다. 우리팀 발표순서가 되었을 때 놀랍게도 AV 과제를 완전히 새로 구상하여 전체 팀원이 같이 촬영하여 만든 작품이 화면에 나왔다. 첫새벽부터 캠퍼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담아낸 애벌레가 여러가지 고난을 거쳐 나비로 변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꾸민 영상이었다. 시간이 굉장히 촉박했을텐데 용케 주제가 있고 구성도 재미나게 만든 결과물을 보니 후배들이 대견하고 뿌듯했다.

 

폐막식 행사에서 우리팀이 AV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사회자가 최우수상 수상팀으로 우리팀을 호명했을 때 팀전원이 환호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와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했다. 솔직히 나도 최우수상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예상밖의 결과에 흐뭇한 느낌이 들었다. 허원과 나도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며 두 손을 꼭 잡았다. 감독을 맡았던 친구가 앞에서 수상소감 얘기를 하는데, 나와 허원 두 코치들 때문에 새로 찍은 작품이라고 소개를하며 우리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한마디만으로 나도 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09학번 후배들의 오리엔테이션을 마무리 했다.

 

 

 

김지영 칼럼니스트

 

김지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에버랜드에 들어가 푸드컬처 사업부 소속으로 일하다가 중국 칭화대학교 MBA 과정에 유학 갔다. MBA 과정을 마치고 락앤락의 상하이 현지법인에서 B2B팀장으로 3년간 근무한 뒤 독립해 상하이에서 씨케이브릿지 컨설팅을 설립했다. 저서 : <사막여우 중국MBA 가다>2013.12, 필맥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