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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문화

[김장현칼럼] 국가의 운명

 

 

 

중국 최고 명문 베이징대와 칭화대를 이웃한 블록에는 한국 판교와 용산전자상가를 합쳐놓은 듯한 중관촌이 있다. 그곳에는 앞으로 수년 내에 미국 실리콘밸리도 갖추지 못한 산학연 연구기능과 IT제품 판매시장을 결합한 복합 IT단지를 만들려는 꿈이 실현되고 있다.

최근 그곳 상점에 들어가 '샤오미'의 스마트폰을 보고 싶다고 했다. 세 번째 가게에서야 영어가 통하는 직원을 만날 수 있었지만, 그는 낯선 외국인을 위해 주로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샤오미' 제품을 기꺼이 구해서 보여주었다. 부팅속도, 외관, 인터페이스 등에서 한국 제품을 턱밑까지 추격한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소위 '가성비'를 고려한다면, 단연코 '샤오미'의 완승이다.

미국 생활할 때부터 줄곧 사용해온 구글의 다양한 서비스를 북경에서 접속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러한 통제는 역설적으로 구글 못지않은 퀄리티를 가진 다양한 서비스들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도움이 됐다. 유튜브 못지 않은 동영상 서비스(유쿠투도우), 이메일 서비스와 메신저 서비스(텐센트 QQ와 위챗), 검색서비스(바이두와 360) 등은 한 개의 ID로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한 구글과 달리 각 서비스가 공존하고 경쟁하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생활편의 서비스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나은 점이 많았다. 일행과 함께 우리로 말하자면 서울 명동쯤 되는 왕푸징의 백화점에 들러 '알리페이'로 결제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로 했다. 동행한 중국인이 스마트폰을 자판기에 가까이 대자 싱싱한 오렌지가 즉석에서 주스가 되어 나왔다. 이제야 '핀테크' 바람이 불고 있는 한국보다 중국의 'P2P' 대출업이 더 빨리 발전하고 있으며, 스마트폰 게임도 이제 우리 기업들이 그들을 벤치마킹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인솔자는 설명했다. 내수시장에서부터 점유율을 급속히 늘려가고 있는 중국 자체 브랜드 자동차의 성장도 뚜렷하다.

이런 비약적 발전이 갖는 비결은 무얼까.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과학기술 및 IT 투자를 들 수 있겠다. 국가 경제의 핵심 역량을 키우는데 정부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국도 강력한 초고속 인터넷 보급 정책 덕분에 세계 수준의 광대역 인터넷망을 갖게 됐듯, 중국 역시 강한 정부 드라이브가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연구개발 지원시스템에는 자율이든 타율이든 정부출연 연구소, 국공립대학, 사립대 및 연구기관간의 역할 조정도 없고, 정치인들은 그런 기관들을 자기 지역구에 유치하는 데 혈안이다. 게다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줄기세포 연구' 등에서 중복투자는 없나 솔직히 우려된다.

효율성 없이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최근 중국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우주탐사' 연구 종사 인력은 무려 15만명이다. '3D 프린터'와 '사물인터넷' 관련 제조업은 중국이 이미 선도국가다. 베이징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에 따르면 2013년 중국의 R&D 투자 규모는 1조1,846억위안으로 세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10년 간 중국의 과학기술 투자는 연평균 23.6%의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중국의 연구개발 총예산이 한국의 10배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한다.

중국을 떠나 김해공항으로 귀국했다. 이미 이용객 수가 인천공항 두 배에 가까운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겨우 한 시간 반의 비행으로 내리니 한숨부터 앞섰다. 우리 정치인들이 대구ㆍ경북에 가서는 밀양에, 부산ㆍ경남에 가서는 가덕도에 만들자고 오락가락하는 사이 중국은 2019년 완공을 목표로 베이징에 신공항 하나를 더 짓기 시작했다.

파티는 끝났다. 우리가 정신차리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갖는 양보와 타협의 장점은 잃어 버리고 갈등과 이기주의만 득세한 상황에서 새삼 국가의 운명을 걱정하게 된다.

 


김장현 칼럼니스트

 

김장현 DGIST 융복합대학 교수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신문방송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뉴욕주립대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와이대 교수로 재직(2007-2012)하다 2013년부터 현직에 부임했다. 소셜네트워크, 뉴미디어, 리더십, 데이터 사이언스 등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학문의 지식을 바탕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정보과학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삶과 문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