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 여행

[박선영 여행칼럼] 不問可知, 4일간의 타이페이(臺北) 방문기

 

 
不問可知, 많은 생각을 안겨준 4일간의 타이페이(臺北) 방문기

 

삶에 지쳐 답답할 때, 기분이 우울하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망설이지 말고 떠나라!

이번 여행의 주제는 ‘不问可知, 생각이 많아지는 타이완(이하 대만)여행.’ 이번 여행 도시는 그 도시가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이고 지리적인 측면에서 종전과는 다른 특별한 중국 여행기인만큼 중국에서 공부한 필자의 여러가지 생각들도 함께 정리해보았다. 우리에겐 가깝지만 멀기만 한 작은 섬.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한두 번쯤은 만나본적 있는 대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곳은 우리에게 묘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이지만 중국과는 전혀 다른 그 곳. 여기 생생한 여행 이야기와 역사적 배경이 함께 뒤섞인 필자의 생각을 공개한다.

 

 

첫째날) 타이페이로


상해에서 직항으로 두세시간이면 올 거리를,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타이페이에 도착하는데까지 8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비행기 삯도 거의 보통 대만 직행가의 두배. 양안의 모순이 빛어낸 아픔이랄까? 생각하는 순간, 우리나라의 분단의 아픔이 불연듯 떠올랐다. 비슷한듯 전혀 비슷하지 않은 두 곳, 한국과 대만.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역사적인 아픔과 사건들이 있었는가.

 

우리나라가 대만과 정식으로 수교를 한 때는 1948년. 우리가 중국과 수교를 하기 오래전에 수교를 하여 40여년 동안 우리에게 중화사상, 역사, 문화 등 중화 문화의 많은 것 을 전달해주었다. 1992년 우리나라가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한 후로, 우리나라는 중국 외교부의 현행법에 입각해 지난 50년 동안 친분을 쌓아온 우호국 대만과 단교를 해야 했고 대만을 정식 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외교 문서에도 승인을 해야 했다. 대만 내에서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던 한국 대사관은 순식간에 교통부 관저로 바뀌었고, 많은 교환 학생들의 왕래와 대만정부의 한국 유학생을 위한 장학금 제도 등이 파결 되었다.

 

급속도로 커져가는 중국의 발전 상황에 따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부터 외교적인 측면으로까지 동아시아의 발전의 원활한 순환을 위하여 많은 것을 중국에 의지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는 부득불 대만과의 단교를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교 이후에 많은 유학생들, 사업가들이 중국 대륙으로 발을 돌렸고 현재의 중국과의 뗄레야 뗄수없는 관계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과의 외교사 한가운데 대만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는데, 중국의 화(華)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는하나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성격의 가정들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둘째날) 타이페이역, 타이페이박물관, 화평공원
 

 

▲ 대만에서 가장 큰 기차역인 타이페이역 광장의 모습

 


▲ 타이페이역 앞을 둘러싼 건물들과 시내로 나온 인파들

 


▲ 타이페이 박물관의 외관

 

대만은 대만 자체로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다. 한국과 같은 급속적인 경제성장과 높은 GNP, 매력적인 기후와 친절하고 근로한 국민성. 하지만 어느책에서 묘사하기를 대만은 일단 역사적, 정치적으로 연계시키면 이야기의 맥락이 달라지는 곳이라 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살갖으로 이해하고 싶어 방문한 대만에서의 첫날. 어제 늦은밤 도착한 타이페이역 근처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주전부리가 맛있기로 소문난 대만에서 꼭 먹어야하는 맛있는 대만식 소우좌빙(手抓饼)으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오전에는 타이페이역과 주변 시내의 여러 특색있는 가게들을 돌아보고 오후에는 근처의 타이페이 박물관(어른20NT/어린이,학생10NT)과 박물관의 바로 뒤에 위치한 228 화평공원(和平公园)과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셋째날) 타이페이101, 시정부, 시먼띵 거리, 쓰린야시장

 

 

▲ 현재 대만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타이페이101
 

 

▲ 타이페이시 시청의 웅장한 모습
 


▲ 타이페이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시먼띵 쇼핑의 거리
 

 

▲ 시먼띵에서 F4의 우졘하오의 공연을 보고 열광하는 여성팬들

 


▲ 밤이되면 더욱 북적거리는 쓰린야시장 일대

 

타이페이 방문 삼일째, 가장 바쁜 하루가 될 오늘은 먼저 지하철을 타고 시정부역으로 향했다. 시정부역에서 내려 30분쯤 걸어가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타이페이101에 도착한다. 508m, 101층으로 얼마전까지도 세계 제일이었지만 이 빌딩 역시 몇년전에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와의 경쟁에서 최고라는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상하이의 WFC가 같은 101층으로 건설되었지만 492m로 타이페이 101과의 경쟁에서 중국 최고의 자리를 노리기에는 약간 모자란듯 하다. 이런 하염없이 솟아 오르는 빌딩들을 통해서 볼수 있는건 역시, 양안의 자존심 대결? (^^) 하지만 양안의 모순을 알리없는 세계 제일의 마천루는 그저 멋진 모습을 뽐내며 하늘 높이 뻗어있다.

 

타이페이 101 건물을 돌아 타이페이 시청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대만의 시부야라고 불리는 시먼띵 거리를 찾았다. 왠지 일본에 온 것같은 느낌이 짙은 시먼띵의 거리에서, 운이 좋아 인기그룹 F4 출신의 우졘하오(吴建豪)의 거리 공연도 볼수있었다. 저녁에는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서둘러, 대만 모든 주전부리와 야식을 맛볼수 있다는 쓰린야시장으로 향했고 근처의 숙소를 찾아 머물렀다.

 

넷째날) 고궁박물관, 집으로

 


▲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고궁 박물관

 



▲ 양안의 모순된 현황을 잘 반영하고있는 대만 공항의 청천백일기


1912년 1949년. 이 두가지 년도는 양안의 근대사에 큰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 1912년은 청조의 멸망, 손중산의 무창봉기의 성공 그리고 중국 민주주의 개단의 시점적 표지이며, 1949년은 중국 2차 국공합작이 무너져내리며 시작된 2차 국공내전의 결말을 나타내는 해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창립 년도이기도 한 49년은 바로 장개석이 모든 중국의 고급 문화재를 가지고 대만으로 내려온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 그 모든 보물과 문화재들은 타이페이 고궁 박물관(어른100NT/단체80NT)의 명성을 이루었다.

 

근대사적으로, 대만과 장개석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시기, 일제의 억압을 피해 중국 대륙으로 옮겨온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많은 측면에서 원조했던 이는 바로 앞서본 타이페이 고궁 박물관의 문화재들을 집대성한 대만의 초대 총통 장개석(장제쓰/蒋介石)이었다. 1953년 대한민국 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던 그는 1924년 제1차 국공 합작에서부터 1937년 제2차 국공 합작까지도 대륙 내에서의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당시 그의 세력 안에서 우리 임시정부는 많은 것을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하였다. 하지만 1949년, 2차 대전이 끝난 이후로도 4년 동안 계속 되어온 국공 내전의 승전보를 중국 공산당의 해방군이 울린 후에 대륙 통일의 열망을 잠시 묻어두고 대만으로 세력거점을 옮긴 중국 국민당 세력과 장개석은 중국 공산당이 대륙에서 선언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뒤로하고 대만에서 중화민국의 존속을 세상에 알렸다.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중화 민족(중국대륙인+대만인+알파)에게 세상은 두 가지로 갈리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와 대만을 정식 국가(중화민국)으로 인정하는 나라, 그들에게 세상은 그렇게 나뉘었다. 1971년 중국이 UN에 가입을 하게 됨에 따라, 대만과 수교를 하고 있던 몇 안 되던 국가들마저 대만과의 단교를 선언하고 중국과 수교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돌아보았음에도 불구하고, 4층 건물에 5개의 큰 홀과 20여 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진 거대한 규모의 고궁 박물관은 양안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옛시절의 중화(華)인들을 살아 숨쉬게 하는것 같았다. 하나의 중국 하나의 중화. 이에 대하여 대만인들은 현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가 오페라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고궁 박물관을 마지막으로 다시 8시간의 하늘 여행을 통해 상하이로 향했다. 중국에 살고 있거나 중국을 통하여 살고자하는 우리들에게 중국대륙과 대만을 둘러싼 양안간의 문제는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현재는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중국을 둘러싼 여러 정세에 대한 시야가 조금씩 늘어나는것을 느낄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희열감을 느낀다. 이러한 사고 과정의 반복은 특히 경험과의 통합 과정에서 많은 지식으로 바뀌어 가는데, 그 단편적인 예가 이번 대만 여행이 아닐까 싶다. 대만에서 혼자 걸으며, 홀로 생각하고 느끼며 얻은 모든 것을 여러 국제적인 정세와 현재의 경제적 상황들과 연관시키는 것을 발견했고, 그 상황들이 대만에서 야기시킨 현실의 모순점들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그 어느때 보다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던 여행이였다. 물론 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볼수 없는 문제가 현재 양안에 존재하고 있고, 우리가 섣불리 손댈수 없는 문제임을 알지만, 진정한 화(華)를 이해하고자 하는 제3국인으로서 양안에 존재하는 문제의 이해를 현실적 접근을 통해 시도해 보는 것도 그들에 대한 관심 표현의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 한국인과 대만인, 국가와 정치와 현실을 초월해 한 명의 아시아인이라는 생각으로 가깝지만 먼 그곳 대만의 이야기를 다시금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 막강한 군사력으로 대만을 점령하지 않고 그 곳 바다 한 곳에 둔 채 오늘날까지 지내 온 중국 대륙정부의 의중을, 대만의 현재의 모습으로 헤아려 볼 수 있다면 또 다른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不問可知, 산의 입구 어딘가에 작은 산수유 한 그루 핀 것을 보고도 세상에 봄이 왔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박선영

 

중국 조기유학 1세대로 중국과 영국에서 청소년기와 대학시절을 보냈다. 상해푸단대 국제관계학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미국계 인사/조직 컨설팅사 Hay Group에 재직 중이다. 여행을 좋아하여 홀로 전세계 30여개국을 여행하였으며 이에 느끼는 바를 블로깅하고 있다. (필명 '유주'로 개인블로그 운영중 http://blog.naver.com/zuk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