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관이 짝퉁을 만나다"
상해 지하철 2호선 ‘과학기술관역’에 내리면 개찰구를 나오자 마자 좌우로 짝퉁샵이 펼쳐진다. 과거 ‘상양시장’이란 재래식 짝퉁시장이 있었으나, 국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이들을 흩어버렸고, 몇 군데 새로운 짝퉁시장이 생겼다. 과학기술관역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상권이 됐다. 시내의 중심 역에 짝퉁샵이 들어서다니 의아할 일이지만, 겉으로는 짝퉁샵을 표방하지 않는다. 그저 옷과 가방, 잡화류를 파는 일반 상점처럼 되어있다. 고가의 짝퉁은 가급적 숨기고 거래하며, 심지어 다락이나 창고에 숨겨놨다가 꺼내온다.
첨단 과학기술관 옆이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운 짝퉁 제품의 집결지라니, 중국의 과학기술이 짝퉁제품에 접목되어 묘한 시너지를 내는듯한 착각이 든다. 이 곳에서 팔린 짝퉁 제품들은 비행기를 타고 세계로 수출된다. 인천 공항에서는 이러한 짝퉁 브랜드 상품을 처분하는 게 일이란다.
“불법이 합법으로 세탁되다”
2011년에만 불법 음악 사이트 100여 개가 문을 닫았다. 이 후, TOP10 음악 사이트들은 저작권자와 음원 계약을 하고 있고, 아직도 이용자에게는 공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시장이 워낙 커서 광고료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낼 수가 있다. 이러한 국가 담당부서 차원의 정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대부분의 음악 사이트는 불법 서비스였다. 심지어 1위 검색사이트인 바이두(BAIDU)도 저작권 없는 음악 서비스를 제공해 왔었다. 올림픽과 상해 엑스포 이후 중국 당국의 저작권을 지키려는 노력은 계속 되고 있다.
한류 컨텐츠를 거의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중국의 유투브가 있다. 이들 두 사이트는 이미 나스닥에 상장을 했고, 합병을 하기로 되어 있다. 상장 전 대부분의 동영상 컨텐츠들은 저작권이 확보되지 못했다. 메이저 업체와의 턴키계약 방식(1년에 얼마로 책정하는)의 계약만 있었을 뿐, 한류 컨텐츠 대부분도 계약의 사각지대였다. 만약 정부가 이 사이트들을 문닫게 했다면 미국땅에 상장한 중국 유투브는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 불법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두 회사는, 중국 이용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영상 서비스로 크게 성장했고, 광고로 수익을 벌어들인 시점에서 당당하게 개별 저작권자와 카피라이트 계약을 시작하게 된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선 저작권확보, 후 서비스’라면, 중국에서는 ‘선 서비스, 후 저작권 확보’다. 이들의 나스닥 상장시 심사관조차 이러한 리스크를 문제삼지 않았다. 중국만의 독특한 방식이 인정받은 걸까?
“차이니즈 웨이는 스마트 웨이?”
중국 직원이 나에게 한 수 가르쳐 주었다. 중국 비즈니스가 글로벌 스탠다드와 부합하지 않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하자, 중국에서는 중국만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며, ‘Chinese way is smart way’라고 표현했다. 무릎을 칠만큼 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렇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듯, 중국에서는 중국만의 방식이 있다. 그것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칼로 무자르듯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단지 과정이 틀리기 때문이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궁극적으로 저작권자는 자신들의 저작권을 보호받았다. 메이저 음악포털, 동영상 포털이 처음에는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았지만, 많은 유저들이 이들 사이트를 방문하고, 궁극적으로 이들이 상장하게 되었을 때, 그 공을 혼자 독식하는 배은망덕한 짓을 하진 않았다. 충분한 트래픽과 수익이 생긴 후에는 저작권자와의 협상을 통해 적정한 계약을 도출해 냈다.
이 때, 공정 가격은 저작권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트가 1년간 벌어들일 수 있는 광고 수익을 기준으로 한다. 그 광고 수익에서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고, 일정 이익도 남길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이 책정된다. 타 국가에서 저작권자가 우위의 권한을 가지고, 서비스 업자가 얼마를 벌어들이던 일단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팍팍한 계약 관행과는 사뭇 다르다.
도덕이나 법보다 실리가, 남의 권리보다 나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문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와 남의 이익이 협상을 통해 동시에 보장되는 비즈니스 관행, 그것이 바로 CHINESE WAY다.
“합법과 불법 사이의 위험한 줄타기”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고민이 있다. 바로 얼마나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할 것인가 이다. 한국에서 해오던 대로 혹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게 사업을 진행해도 된다. 제품이 독보적이고 브랜드 가치가 충분해서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해도 수익을 실현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경우이다. 예들 들어 삼성전자 제품이 그 경우다.
하지만, 중견 기업을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중국 기업들을 상대로 경쟁할 경우 대부분 패하게 되어 있다. 이유는, 능력 부족보다도 위에서 얘기했던 중국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시스템, 차이니즈 웨이 때문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중국에서 음원 서비스를 할 경우, 한국이라면 일단 저작권자와 음원 계약을 맺고 일정 금액을 선 지출한 후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해야 한다. 하지만 경쟁 중국 회사들은 아무도 이런 계약을 먼저 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빌보드 차트 꼭대기의 곡들을 불법으로 먼저 서비스한다. 그러다가 이용자들이 몰리면 저작권자가 이를 알게 된다. 그러면 저작권자는 바로 소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을 제안하는 공문을 보내게 되고, 이에 대해 서비스업자는 시간을 끌며 지난한 협상에 돌입하게 된다.
“우리가 아직 돈을 버는 게 없어. 조금만 기다리면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계약을 할 수 있어. 올 해만큼은 이 정도로 합의하자. 정말이야 지금은 진짜 돈 없어…”
이런 방식의 진솔한 대화다.
외자 기업이 과연 이러한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거의 힘들다. 언제든 중국 정부로부터 철퇴를 맞을 수 있다는 불안함 때문에 합법적인 서비스를 고집한다. 중국 기업들은 외국기업의 이러한 약점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저작권자는 중국 기업을 대할 때와, 외국 기업을 대할 때 이중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도 한다. 가격 자체가 다르기도 하고, 외국 기업에게만 무리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요구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엿장수 맘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합법과 불법은 백지 한 장 차이다. 그 사이에 길다란 줄이 두 개 걸려있고 우리는 때로는 합법적인 줄을, 때로는 불법적인 줄을 타게 된다.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리스크를 관리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닥 위험한 건 아니다. 시장 광대의 줄타기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궁극적으로는 합법의 줄로 돌아와야 한다. 불법의 나락으로 빠져 시종일관 한쪽 줄만 탄다면, 중국 정부의 응징이 가해질 거다. 중국의 새 정부는 투명성과 합법성을 강조하고 있기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
“중국인 명의를 빌릴 경우”
변주곡은 즐김으로 끝나야 한다. 욕망이 지나쳐서 갈등을 만들지 않는게 중요하다. 한 사례로, 중국인 명의 빌리기가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다양한 법률적 제약을 두고 있다. 똑 같은 업종의 똑 같은 기능을 하는 회사더라도, 설립시에 중국인과 외국인의 최소 자본금이 틀리고, 매년 걷는 세금도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이러한 불편함을 피하고자 가장 쉽게 유혹받기 쉬운 게 중국인 명의 빌리기다. 명의를 빌려야 내자 기업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절차도 간소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경우는 내자 기업이 아니면 계약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인 명의를 빌릴 경우, 사업이 잘되어도 문제, 안되어도 문제다. 잘 되면 명의를 빌려준 중국인이 마음이 변할 확률이 높고, 사업이 잘 안되면 기업 청산이나 빚 등의 이슈가 생긴다. 모든 권한과 책임이 바로 명의를 빌려준 중국인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더 나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중국인 명의의 로컬 기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 경우, 명의를 빌려준 중국인에게 일정 정도의 사례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계약을 통해 명의를 빌려준 자가 과도한 욕심을 갖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해 두어야 한다. 또한 자금, 핵심자산, 핵심 인력은 내자 중국 기업이 아니라, 외자 기업으로 항상 이전해 두는 등 확실한 백업 플랜이 필요하다. 비즈니스는 늘 최악의 사태를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신동원
인터넷 업계에서 15년을 보냈다. 2004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중국지사장으로 부임한 후 현재까지 8년여의 중국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 워싱턴대-상해 복단대 Executive MBA를 졸업하고, 2009년 LG유플러스를 거쳐 2010년에는 네오위즈차이나의 법인장으로 부임했다. 현재 중국의 모바일 CEO 모임인 ‘장성회(Great Wall Club)’의 정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저서 <<나는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만났다>> 참돌,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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