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어느 아파트에서 만난 게리왕"
2005년 봄에서 여름으로 가고 있던 시기로 기억한다. 슈퍼마켓에서 음료수와 먹을 것을 잔뜩 사 들고 걸어가는데 땀이 날만큼 조금 더운 날씨였다. 중국 친구 하나가 창업을 했는데, 위문차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알려준 주소로 가까이 갈수록, 아파트 밖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저쪽에서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반바지 차림이었지만 표정 만큼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무실은 어두 컴컴했다. 그냥 방 세 칸이 있는 평범한 로컬 아파트였다. 직원이 다섯이었는데, 모두 시커먼 남자들인데, 몇 일 밤을 샜는지 표정도, 옷도 그다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시큼한 땀냄새도 좀 나는거 같고, 그들이 쓰는 PC는 뒤통수가 툭 튀어나온 구식 모니터에 속도도 느려 보이는 중고 PC 였다.
이 회사가 2011년 나스닥에 상장한 후, 이듬해 경쟁사인 요우쿠에 매각하여 캐시 아웃을 한 중국의 유투브, 투도우이다. 투도우의 게리 왕은 그 당시 나의 친한 친구였다. 그 전부터 쌓은 인연 때문에, 내가 도울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도왔었다. 당시에 중국보다 다소 앞서있는 한국의 인터넷 시장 관련 자료를 주었고, 서로의 고민에 대해 인간적인 대화도 나누었다. 나는 투도우를 통해, 어떻게 중국의 작은 벤처가 거대한 상장사로 거듭나는지 일련의 과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치, 번데기로부터 애벌레, 나비로의 진화 과정이랄까?
중국의 벤처들은 이렇게 초라하게 시작한다. 아파트에서 혹은 변변치 못한 공간에서 고작 몇 명이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스티브 잡스도 아버지의 차고에서 시작했듯이.
“간판이 중요해”
한국 기업들의 시작은 조금 다르다. 아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대략 수 천 만원 이상의 인테리어비를 들여 사무실을 꾸민다. 중국에서는 소위 ‘가호’가 중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창피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다. 총경리실(사장실)을 따로 꾸미고, 손님이 왔을 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가죽 소파도 필수다.
간판을 달고 나면 뭔가 할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있다. 그렇게 한국 기업은 시작한다. 위치가 시내 중심인가 외곽인가의 차이일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위 투도우처럼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기업도 적지 않지만, 중소기업 이상의 규모라면 대부분 이와 같은 시작을 한다.
그렇게 차려놓고 시장을 테스트하던 중, 본사가 어려워지거나,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거나, 중국 환율이 널뛰기를 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고정 비용이 50%가까이 상승하는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되면, 과감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접고 들어가기도 한다. 인테리어 비용도, 사무실 보증금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외국 기업으로서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것을 권할 수는 없지만,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고정 비용을 많이 쓰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언제 어떤 상황이 닥쳐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중요하다. 길게 버티면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보통, 중국 업체는 5년 이상을 버티는데, 한국 업체는 3년이 한계인 거 같다. 3년을 버티다가 포기하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시장이 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돈 한푼 안 들이는 마케팅을 아시나요?”
아파트에서 시작했던 투도우의 성장에 가장 큰 힘이 뭐였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공짜 PR’이었다고 회상한다. 인터넷 미디어, 중견 미디어 기자들을 최대한 많이 부르고, IT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기업인들을 한 자리에 불러 맥주 파티를 연다. 말이 맥주 파티이지 가보면, 안주도 없고 그냥 맥주를 산더미처럼 쌓아놨다. 맥주를 쌓아 놓은 모양이 회사의 로고였고, 벽에는 갖가지 페인트 낙서가 있었다. 낙서라기 보다 예술에 가까운 다양한 벽화, 글씨가 꽤 근사했다. 천장은 꽤 높아서, 사무실인지 박물관인지 헷갈리고, 화장실은 앉으면 다리가 보이고, 일어서면 얼굴이 보이는 구식 화장실이었다. 건물 자체가 100년이 된 유서 깊은 곳이었기 때문에 그리로 선정했다고 했다. 약간은 독특한 게리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이렇게 정기적인 파티는, 가입자가 늘어날 수로 잦아졌고, 언제부터인가는 언론에 게리가 집중 조명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게리의 MBA 유학 경험과 독일 기업 베텔스만 출신이라는 백그라운드, ‘중국의 유투브’라는 화려한 수식어였다. 그렇게 투도우는 성장을 해갔다. 마케팅 비용을 따로 집행을 하긴 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돈을 들이는 마케팅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안다. 투도우는 이미 시장 선도자였고, 굳이 마케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고정비”
한국 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정비다. 주재원 몇 명의 비용이 1인당 억이 될 수밖에 없고, ? 보통 한국에서의 급여에 약간의 주재비, 주택지원, 교육비 지원을 하게 된다 ? 이러한 한국 직원을 서너명만 두어도 엄청난 액수의 고정비가 생긴다. 빨리 사업이 안착을 하거나, 돈을 벌게 된다면 수십 명을 두어도 상관이 없겠지만, 적자 상태가 2년, 3년 지속되다 보면 결국 한국인 주재원을 본사로 돌려보내거나 심한 경우 사업을 접게 된다.
그렇다면 왜 한국 기업들은 한국인 위주의 조직 구성을 하게 될까? 사실, 일본 기업도 그러한데, 이유는 자국의 인력을 더 신뢰하기 때문일 거다. 특히, 보고가 유독 많은 한국 기업은 현지인이 한국어를 능통하게 하지 않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 늘 어렵다. 한국 인력은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필요하다기 보다,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과 중간 다리 역할을 위해 필요한 거다. 특히, 중간 관리자 이상의 시니어라면 대부분 그런 경우라고 봐야한다.
주재원의 주요 역할이 한국 본사 손님의 수행이란 말이 공공연하니, 얼마나 현지화되지 못하고 비효율적인 조직인지 알 수 있다. 일은 못해도 본사 임원 수행을 잘 하면 임기를 길게 이어 갈 수 있다. 모 대기업 주재원은, 본사 사장님 오셨을 때 수행을 잘 못했다는 이유로 얼마 안되어 본사 발령이 난 경우도 있다. 현지화되지 못한 글로벌 담당 임원, 현지화할 시간이 없는 주재원, 이러한 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다. 상품과 브랜드가 기본적으로 훌륭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건 현지화의 이슈이기도 하지만, 처음 얘기했듯이 중국 내 조직의 고정비 문제가 더 크다. 중국인 위주로 구성된 현지화된 조직이, 기업의 고정비를 크게 덜어줄 수 있다. 꼭 중국인이 아니어도, 중국 현지에는 실력 있고 젊은 한국인 인력들 또한 많이 있다.
“토끼와 거북이의 싸움”
중국 기업은 아파트에서 시작해서 심지어 인건비도 지급을 보류하며 ? 주로 주식 형태로 보상하기도 함 ? 최소의 고정비로 사업을 시작한다. 한국 기업은 인테리어도 해야 하고, 본사 보고를 위해 한국인 주재원을 최소 서너 명 이상 두어야 한다. 소박한 거북이와 돈 잘 쓰는 토끼의 싸움이랄까? 고정비용이 큰 토끼는 길게 볼 시간이 없다. 수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하고, 졌다 싶으면 본사로 달아나게 된다. 잃을게 별로 없는 거북이는 공짜 마케팅에 공짜 인건비까지, 돈을 거의 안 쓰기 때문에 3년이든 5년이든 그냥 간다. 돈을 못 벌어도 그 업계에서 손가락 안에만 들면 된다는 확신이 있다. 최악의 경우, 적자라도 고객을 확보한 상태로 다른 회사에 팔면 그간의 투자금을 몇 십배로 회수할 수 있다.
중국 비즈니스, 세련됨을 버리고 투박하게 거북이 스타일로 시작하면 어떨까? 특히 본사의 투자 여력이 많지 않은 기업일수록 초기 세팅시에 고정비를 최적화하는 게 좋다.
칼럼니스트 신동원
인터넷 업계에서 15년을 보냈다. 2004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중국지사장으로 부임한 후 현재까지 8년여의 중국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 워싱턴대-상해 복단대 Executive MBA를 졸업하고, 2009년 LG유플러스를 거쳐 2010년에는 네오위즈차이나의 법인장으로 부임했다. 현재 중국의 모바일 CEO 모임인 ‘장성회(Great Wall Club)’의 정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저서 <<나는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만났다>> 참돌,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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